인지의학(Anthroposophical Medicine)에서 바라보는 ADHD
인지의학(Anthroposophical Medicine)에서 바라보는 ADHD
by Dr. med Walter Pohl "Journal of Anthroposophical Medicine"에서 발췌. 번역: 이동민
추정치에 따르면, 모든 아이들의 3-5%는 ADHD 또는 ADD로 일컬어지는 과잉운동증후군(Hyperkinetic Syndrome)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압도적으로 남자아이들이 많다. 과잉운동증후군은 6세 전에 시작된다. 우리의 이전 생각과는 반대로 이 아이들 중 대부분은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장애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모든 성인 가운데 1-4%가 과잉행동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ADD 증상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크게 4가지 주요증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 부주의하고 산만하며 질서가 없다. 계획성이 없고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지시에 따르지 못하며, 쉽게 잊어버리고 부주의한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 과잉행동을 보이며(필수적 증상은 아니지만), 항상 움직이며 실제로 차분한 활동을 할 수가 없다.
- 대게 성급하고 충동적이며, 생각하기 전에 우선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예로, 급격한 감정기복을 보이기 쉽다.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이러한 증상들이 최소 6개월 이상 그리고 최소한 두 가지 장소(예를 들어 가정과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대게 이러한 장애를 겪는 과정 중에, 또래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Peer Rejection), 쉽게 산만해 지거나, 학습수행능력이 떨어진다거나, 학교를 옮겨 다니거나 그리고 학년을 반복하거나, 반대되고 반항하는 행동(ODD)을 보이거나, 알코올이나 마약을 남용하는 등 일련의 사회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들이 병행된다. 하지만 명확하게, 이러한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가진 뒤에야 비로소 진단을 내릴 수가 있다. 아이에게 ADD라는 진단을 내리기전, 아이의 생활환경은 세심하고 주의 깊게 관찰되어 하나의 전체적인 상이 나야와 하며, 아이가 노출되는 모든 삶의 환경을 점검하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Caregiver 또는 교사)의 의견 또한 수렴되어야 한다.
주의력결핍 증후군은 복합적인 장애로, 장애를 가진 아이나 가까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초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병을 바라보는 인지학적 관점이 요청된다. 이 현상에 대한 현 논의는 크게 두 양극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쪽은 공감적인 입장(Sympathetic Attitude)을 취함으로서 실제 문제점들을 희석시키거나 보다 가볍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행동적인 또는 심리적인 측면에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고 단지 좀 특별한 아이(Special Children)인 것이다. 그러한 아이들은, 사회적 환경 내에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볼 만큼 아직은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였으며, 이는 단지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 행동들이 다르게 보여 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별 아이들(Star Children)'이라 부르며, 넘치는 생명력과 에너지를 선사 받았으며 자신들의 관심을 끄는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인다고 말한다. (Georg Kühlewind: "Die Sternkinder und die schwierigen Kinder", Das Goetheanum No.11, March 11 2001).
반대적인 관점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심각한 주의력, 행동, 그리고 학습과 연관된 장애는 기원적으로 뇌 결함에 근거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류적인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Cordula Neuhaus는 그녀의 책(Das hyperaktive Kind und seine Probleme)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이 증후군이 신경 생물학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녀의 견해를 따르자면, 아이가 충분한 자기 동기부여를 유지하거나 상황에 맞은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아이 양육과 관련된 원인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명백히 반박 되어진다.
이러한 양극 사이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질병인가 아니면 행동과 학습에 관련된 일종의 장애인가? 그리고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가? 이러한 상황에서 루돌프 슈타이너가 내린 병에 대한 정의는 큰 의미를 준다. “인간은 자신의 몸 안에 이질적인 성질의 것이 축적될 때 병이 나게 되는데, 그것들은 적절히 처리되지 않고 지구 환경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물질 세계로부터의 지나친 이화(異化)의 힘을 가지고 있다.” 아동 발달 단계에서 생애 초기는 모방의 시기이다. 아이가 이러한 외부의 인상들을 제대로 받아들이고(소화해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누구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아이는 이러한 “외래의 것”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뚜렷한 사실들을 발견했다.
- 이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피로한 아이의 행동과 유사성을 보인다. 정상적인 능력과 재능은 허약한 마음에
꺾이게 된다.
- 목표 지향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동기부여의 결핍이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 모방을 통해 학습하는데 어려움을 보인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선다. 일이 주어졌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경험한다.
- 초조하고 예민하다. 건강한 아이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외부자극들에 대해 이 아이들은 내면적으로 상처
를 받는다.
- 공감의 힘이 반감의 힘을 제압한다.
- 그 결과 신체 내 자아 조직으로부터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한다. 자아 조직은, 외부상황에 대해 적합한
조절 능력을 행하는 리듬계를 통해 상위의 신경-감각계와 하위의 신진대사-사지계의 원활한 관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ADD를 겪는 아이들의 사회적 경험은 실제 움직임의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다. 즉, 신진 대사계의 방식대로 움직인다. 한 때 이 아이들은 알레르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가정이 선호되었다. 저자이자 이러한 논제의 옹호자였던 미국 소아과의사 Ben Feingold는 이 문제에 대해 그 이후 오랜 연구를 한 결과 이것은 실제 알레르기 반응이 아니라 인간이 “인공 합성 첨가물에 대해 자연 방어력이 없다”는 결론에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을 일으키는 식품 첨가물을 제거하면서 극도로 과잉 행동 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은 현저한 증상완화를 보였으며, 식품 첨가물을 다시 도입하였을 때 그 증상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많은 부모들에게 채택되고 확인되었으나, 공식적으로 용인되지는 못하였다. 제약사인 Hertha Hafer는, 심각한 행동 장애를 가진 자기 아이의 상태가 진정제에 의해 현저하게 악화되었고 반면 자극요법(Stimulating Remedies)에 의해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녀는 마침내 식품첨가물 즉 인산염(역자 주: 합성 세제, 인산 비료, 살충제 그리고 탄산음료에도 소량 함유)이 이러한 증상을 촉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의 경험은 다른 부모와 아이들에게도 재연되었다. 생화학적으로, 인은 당(糖)과 연관이 있으며, 당이 신진대사계로 들어가서 ATP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산화과정을 거쳐야한다.
(역자 주, ATP의 일반적인 정의 --- ATP란 생물체 내에 존재하는 화합물입니다.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에 인산기가 3개 붙은 것으로 고에너지 화합물이기때문에 이 인산기가 아데노신에서 떨어져 나갈 때마다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생물체는 영양분을 분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로 대사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저장해 두는 것보다 ATP형태로 바꾸어 놓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보통 생물체 내에서는 ATP로 저장하게 됩니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물질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치유교육(Curative Education Course)의 다섯 번째 강의에서 증상에 대한 원형적 상을 제시한다. 그는 인체 조직을 간략한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인간 존재의 구성체들 배열(위치)을 명확히 표현한다. 그 핵심은 리듬 조직을 가운데로 한 완전한 양극성이다. 강의 중 슈타이너는 아래와 같은 칠판 그림을 그린다.
슈타이너는 우선 자아가 가장 바깥에 있는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아스트랄체, 생명체, 물질 육체의 순서로 그려나갔다. 이것과 옆에 나란히 반대되는 순서로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시키면서 감각 인상이 외부에서 받아 들여지고 퍼져나가는 인간의 신체 조직을 제시한다.
한 쪽의 자아에서 받아 들여진 인상은 또한 다른 편의 자아에도 공명(resonate)한다. 아스트랄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우리가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인상들은 신진대사-사지계에 이와 동일한 거울상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우리 기억의 근거가 된다. 우리가 외부로부터 감각인상을 받게 될 때, 그 감각 인상은 머리 조직으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머리 조직은 바깥의 물질체로부터 안쪽 ‘I'순서로 구심적으로 구성되어있다. 사라진 감각인상은 신진대사-사지계로 전달되며, 이후 기억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심상(mental image)의 형태로 신진대사-사지계로부터 다시 떠올려지게 된다.
이러한 인체 양극의 역순을 묘사함에 있어 인체 구조를 생각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뼈로 대표되는 물질 육체가 머리 영역에서는 바깥 가장자리에 있으며 사지와 신진대사 영역에서는 안쪽에 위치한다. 상위체계의 반대편에 위치한 하위체계가 너무 약한 경우 감각 인상들은 하위체계에 충분히 깊게 각인되지 못하고 다시 상위체계로 반사되어 그곳에서 반복되는 심상들로만 맴돌게 되며, 이때 새로운 감각 인상들에 대한 충분한 주의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묶어두게 된다. 상위 체계 역시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자아와 아스트랄체가 주변부로 과도하게 흡수되고 따라서 신체적인 각인 과정이 약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역동성을 우리가 이해하게 될 때 이 아이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들을 위한 적합한 치료법을 개발해 낼 수가 있다. 슈타이너가 묘사한 것은 우리가 직면한 이러한 장애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인체 내 위와 아래 양극사이의 불균형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다. 불충분한 침투, 상호연결, 상위-하위 멤버 작용의 조정(mediation)이 치유 접근법을 개발하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치료의 목적은 자아를 강화시켜 자아가 연령에 적합한 방식으로 육체 속으로 안내 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나 움직임에 대해 좀 더 고려해보고 유도된 인지적 움직임의 치료적 중요성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잉행동장애 아이들의 주된 증상 요인은 움직임과 연관한다. 동시에, 이 아이들이 가진 일종의 ‘서투름‘이 큰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아이들의 부상빈도수는 상당히 높다. 섬세한 동작기술(또는 근육, 신경)은 성숙되지 못하였으며, 목표를 향한 큰 동작 또한 명확하지 못하며, 전체적으로 운동 기능은 “몽유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움직임과 그 발달단계를 통하여 아이의 영혼적 삶에 대한 최고의 상을 그려낼 수 있다. 즉, 그러한 움직임 속에 인간의 자아본성은 표출된다. 움직임은 항상 외부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개별성을 표현한다. 움직임을 통해 자신 안에 외부세계가 경험되어지고 감각들은 그 세상의 모습들을 전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이가 행동 안에서 경험하는 것과 그 결과 어떻게 아이의 영혼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감각 경험의 이원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은 결코 단지 한 가지 감각을 통해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동시에 자기 자신과 친밀하게 연관된 또 다른 감각을 통해 어떤 인상을 받아들인다. 하나의 감각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우리의 일상적 인식 안으로 들어오며, 나머지는 희미하게 남아있다. 달리 말하자면, 감각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감각들 가운데 일부는 본질적으로 외부에 속한 바깥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경험하게 해주며, 반면 다른 감각들은 우리 자신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들과 가까이 연결된 감각들로 균형감각, 운동감각, 생명감각 그리고 촉각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이 감각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our own being)은 항상 희미하게 감각되어진다.
어떤 물체를 보게 될 때 동시에 운동감각을 통해서 어떤 인상을 받게 되며, 이 운동감각을 통해 보이게 된 것이 하나의 심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비록 두 가지의 구별되는 감각활동에 따른 이원적 관계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과정이 하나로만 보인다. 이 가운데, 희미하게 인식되며 신체와 관련된 요소가 현실 경험과 관련된 감각이다. 감각들 사이에서의 이러한 이원적 관계들은 아동기에 발달되기 시작하며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 감각들은 인간 적응능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간주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현실을 전달하는 희미한 의식의 감각들과 본질적인 상들을 전달하는 좀 더 깨어있는 감각들 사이의 관계성을 묘사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관계성이 아동기에 적절하게 발달하지 못하면 그 결과 심각한 불안정 상태가 발생한다.
치유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관심사들 중 하나는 운동기능들을 발달시켜 세상을 경험하는 하나의 수용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운동기능 향상이 자연스럽게 감각처리 발달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각 경험은 항상 운동기능들에 의해 활기를 띄게 된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운동 작용의 본질적인 특징은 세상에 대한 모방이다. 우리의 사지는 좀 더 바깥세상을 향해 그리고 머리는 좀 더 개별적인 인간 자신을 향해 방향 지워져있다. 이런 면에서 움직임은 두 가지 관점을 보여준다.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세상에 대한 모방이며, 다른 면은 모방한 것을 개별화(자기내면화)하는 것이다. 모든 움직임은 이 두 긴장의 영역 내에서 발생한다. 한정된(제한된) 또는 한쪽으로 치우친 운동기능 발달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이든 또는 세상 사물들과의 관계이든 간에, 아이의 모방에 장애를 가져온다. (Georg von Arnim: Bewegung Sprache Denkkraft, Der geistige Impuls der Heilpädagogik.)
형성력은 생애 첫 7년 머리에서부터 진행되어 두 번째 7년 동안에는 호흡-심장계로 계속 작용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반드시 치료가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는 반드시 집중적인 감각훈련을 통해 충분한 도움을 받아야 하며, 특히나 촉각을 시작으로 “하위감각”을 발달시켜야 한다. 아이의 주의가 반드시 감각 인상들을 경험하는 쪽으로 향해져야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현실에 기초해 세상의 표현법을 개발할 수 있으며, 그러지 못한다면 세상은 마치 하나의 필름처럼 경험되고 현실과의 관계성도 발달시킬 수 없다. 고유운동감각, 균형감각 그리고 생명감은 초기에 교육의 중점 과제가 되어야 한다. 현 교육에서의 시각과 청각의 과도한 강조는 우리가 지금껏 기술한 병적인 현상들에 대해 일부 책임이 있다. 매체들은 감각 경험에 대해 일방적인 악영향을 제공하며, 사실상 감각들의 이원적 관계성을 말살하며 그러한 관계성이 아이들 신체에 깊게 전달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향후의 학습 준비성은 아이들 삶의 리듬 확립에 달려있다. 규칙적인 식사는 아이들의 소화 작용에 도움을 주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통해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를 더욱 굳건히 붙잡아 둘 수 있다. 발도르프 학교의 일학년 교과과정의 본질적 요소는 학습 과정중의 리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움직임의 한 형태로서 유리드미는 가장 이상적인 치료적 도움을 제공한다. 신진대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아이들이 가지는 단 음식에 대한 욕구는 이해가능하며, 충분히 수용되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단 맛이 나는 다양한 과일을 먹게 하며, 실제 이것은 식이성 치료 지침이기도 하다. 대게의 경우 치유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 당분은 자연적인 탄수화물(곡식류)의 소화를 통한 것이어야 하며, 단 맛에 대한 경험은 오직 서서히, 오랫동안 씹기를 통해 얻어져야 한다.
상위 신경-감각계에서 하위 신진대사-사지계로의 연결에서 그 흐름이 원활치 않은 경우 목 기저부가 팽팽해지고 긴장되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두통으로 이어져 아이들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보조적 치료로서 엄마가 부드럽게 도포 마사지를 해줄 수도 있다.
특정 음식에 대한 반작용에 의한 것이든 또는 외래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에 의한 것이든, 이러한 신진대사계의 불균형과 혹사로 인해 상위 체계로부터 하위 체계의 신진대사 활동에까지 충분히 침투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강압적인 불안이 나타나게 된다. 유사하게, 심리적 외상을 겪은 경우에도 정신적 과잉 활동으로 이어진다. 아동기에 신체적 활동(신진대사-사지계의 영역에서)에 결합되어있어야 할 힘이 신체의 통제를 벗어난(body-free) 영혼-정신적 활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발달 단계에서 머리의 형성력 역시 아직 충분히 스며들지 않은 상태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리탈린(Ritalin)을 이용한 치료는 일시적인 증상 완화를 보여주는 것일 뿐 치료제가 아니다. 신체적 수준에 한정될 뿐 아니라 인간의 상위 존재들(아스트랄체와 자아)이 무시되면서, 단순히 신경-감각영역에 대한 일방적 자극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형성 및 발달과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이미 다양한 최근 연구결과들을 통해 잘 알려진 많은 부작용들은 차지하더라도 치료적 의미도 크게 찾아 볼 수 없다. 게다가 또 다른 최근 연구에 따르면 취학 전 아동의 경우 가족중심의 중재가 있을 시 의학적 치료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이러한 증상은 반드시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을 가진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와 포용력이다. 이 아이들은 항상 앞서 나가려하거나 너무 빠른 발달을 경험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또한 우리의 책임이 아닌가? 아이들이 세상과, 그리고 자신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이러한 병적 현상들이 증가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의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이러한 얇은 피부를 가진, 그리고 민감한 어린 아이들은 흔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거친 조개 껍질 안에는 따뜻한 마음의 힘이 숨어있으며 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자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