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 강의] 건강한 영양 섭취와 양질의 음식
건강한 영양 섭취와 양질의 음식
(Questions of nutrition-children's nutrition-hardening of the arteries-anuring, 1924) 번역: 이동민
오늘은 지난 주 Burle씨께서 한 질문에 대한 답에 조금 덧붙이고자 합니다. 제가 인간에게 필요한 4가지 영양소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미네랄, 감자나 특히 곡류, 콩류에 포함된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단백질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영양소 측면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다른지, 예를 들어 단백질이 소금 같은 물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 드렸습니다. 소금은 섭취하면 그대로 머리까지 올라가서 원래의 소금 성분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소금이 녹아서 용해된다는 점을 빼면 소금성분 그대로입니다. 소금은 머리까지 가는 내내 소금으로서 자기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단백질은, 예를 들어, 보통 달걀에 들어있는 단백질이나 식물성 단백질도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위나 장에서 바로 분해되면서 더 이상 단백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런 단백질을 분해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뭔가를 다시 조합해 자신만의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이 섭취한 단백질을 분해하지 못한다면 단백질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단백질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선, 여러분이 특출 나게 뛰어나서 시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상상해봅시다. 하지만 여러분이 시계의 외관밖에 보지 못했다면 바로 시계를 만들 수는 없겠지요. 시계를 분해해서 모든 부품을 뜯어보고 부품 하나하나를 늘어놓고 부품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있는 지 살펴본다면 어떻게 해야 다시 조립해서 원래 모양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몸도 단백질을 만들 때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먼저 단백질을 섭취하고 낱낱이 분해해야 합니다.
단백질은 탄소와 질소, 산소, 수소 그리고 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단백질의 주요성분입니다. 단백질이 이런 성분들로 완전히 분해되어 장에 도달했을 때는 더 이상 단백질이 아니라, 탄소, 질소, 산소, 수소, 황으로 존재하는 거죠. 이해되시나요? 시계가 부품들로 분해되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단백질도 각각의 구성 성분들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시계를 분해할 때 그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나중에 다시 원래대로 조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단백질을 한 번 먹고 나면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한 인간은 완전한 독립체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뭔가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기억력은 없습니다. 단지 기억의 힘을 이용해 몸을 키워갈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단백질을 먹어야 합니다.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어낼 때는 아주 아주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섭취한 단백질을 여러 구성 성분으로 분해해야 하고 거기에서 탄소를 끄집어내어 몸 구석구석으로 퍼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 공기 중에서 산소를 들이마시고, 그 산소는 우리가 단백질이나 다른 음식에서 섭취한 탄소와 결합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탄소를 일부만 남겨두고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뱉어냅니다. 이제 우리 몸에는 탄소와 산소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단백질에 있던 산소를 남겨두거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숨을 쉴 때 들이쉰 산소를 사용해 탄소와 결합시킵니다. 따라서 물질주의자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달걀을 잔뜩 먹고 몸 속에 단백질을 퍼뜨리는 식으로 단백질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상은 우리 몸의 작동방식 덕분에 우린 살아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달걀을 먹어도 닭으로 변하지 않으니까요! 이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닭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몸이 장에서 단백질을 분해하고, 단백질에 있는 산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산소를 들이쉴 때 우리는 공기 중에 있는 질소도 들이마십니다. 여기서 다시, 우리 몸이 단백질을 합성할 때 우리가 섭취한 달걀 (단백질)에서 나온 질소가 아니라 공기 중에서 들이마신 질소를 사용합니다. 또한 달걀을 통해 섭취한 수소 역시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코와 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수소를 사용해 단백질을 만들어 냅니다. 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를 통해 끊임없이 들이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섭취한 단백질로부터는 유일하게 탄소만을 단백질 합성에 사용합니다. 다른 구성성분은 공기 중에서 가져옵니다. 이것이 단백질 합성의 과정입니다.
지방도 유사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섭취한 단백질에서는 탄소만을 사용해 우리 몸은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지방도 만듭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음식에서 섭취한 질소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제 아시겠지만 우리 몸은 자체적으로 단백질과 지방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감자나 콩류 그리고 곡식으로 섭취한 것만이 우리 몸을 통과합니다. 심지어는 이런 탄수화물조차도 우리 몸으로 완전히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아랫부분까지만 흡수됩니다. 우리가 섭취한 미네랄은 머리 전체로 흡수됩니다. 이 미네랄로 우리는 뼈를 성장시키는 물질을 얻습니다.
여러분, 이제 아시겠지요. 그래서 건강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건강한 식물성 단백질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몸이 다량으로 필요로 하는 양분입니다. 우리가 달걀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게을러집니다. 우리 몸은 동물성 단백질을 쉽게 분해할 수 있고, 동물성 단백질은 쉽게 분해되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로 식물 중에서도 과일에서 얻는 식물성 단백질은 특히 우리에게 가치가 있습니다. 건강하길 원한다면 과일을 식단에서 빼놓지 말아야 합니다. 요리를 하든, 생으로 먹든 과일은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면 소화작용이 둔화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가 또한 식물을 키울 때 적절한 양분을 주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이 말은 식물들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식물들은 미네랄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식물은 우리가 땅에 뿌린 씨앗에서 자랍니다. 식물은 토양이 어느 정도 살아있지 않으면 무성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럼 땅을 어떻게 살아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거름을 제대로 주어야죠. 그렇습니다. 거름을 제대로 주어야 좋은 식물성 단백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좋은 거름은 마구간이나 외양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좋은 거름은 농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물질주의가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이봐, 거름은 훨씬 쉽게 해결할 수 있어. 거름 성분을 분석해서 광물에서 그 성분들을 추출해내는 거야. 화학비료지!’
아시겠지만 화학비료를 쓰면 그건 마치 화학성분, 광물성분을 땅에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뿌리만 강해지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식물들에게서 뼈를 성장시킬 양분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식물에서 적절한 단백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식물들과 곡물들은 오랫동안 단백질 부족에 시달려 왔습니다. 다시 좋은 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런 부족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농부들이 농업관련 회의에서 ‘곡물의 질이 점점 나빠져 갑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농부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당신들이 젊었던 시절에 땅에서 거둔 것들이 모두 지금보다 더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똥거름에 들어있는 성분들을 모아서 소똥과 같은 비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쓸모가 없습니다. 소똥거름은 어떤 화학자의 실험실에서 나온 게 아니라 훨씬 더 과학적이고 정교한 실험실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소의 내장기관이라는 훨씬 더 과학적인 실험실 말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소똥은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작물들 내부에 강력하게 작용해 우리를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게 해주는 고품질의 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요즘 인기 있는 화학비료나 공기에서 합성한 질소만을 거름으로 쓴다면, 여러분의 자식들, 특히 손자들이 얼굴에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될 것입니다. 얼굴과 손이 구별이 안될 정도로 말이죠. 땅에 거름을 잘 주었을 때 인간들은 생기 있고 건강한 혈색을 띠게 됩니다.
지금쯤이면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셨겠지만 영양에 대해 얘기하려면 우리는 작물이 어떻게 재배되고 있는 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 경험으로 보아 우리의 몸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보통 감옥에 몇 년 동안이나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지방이 부족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기름기를 보면 주체를 할 수가 없게 되죠. 간수가 초를 들고 감방을 둘러보러 와서 촛농이라도 바닥에 떨어뜨리면 죄수들은 그 촛농을 핥으려고 달려듭니다. 우리 몸은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그 결핍을 강하게 느낍니다. 우리가 매일 적당히 골고루 식사를 하면 필수 영양소가 결핍될 일도 없고 이런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영양소가 몇 주 동안 계속 부족하면 우리 몸은 그 결핍을 강력하게 느낍니다. 이 점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여러 번 제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12세기나 13세기 혹은 그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우리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점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 때는 감자가 없었습니다. 감자는 훨씬 후에야 유럽에 들어왔습니다. 감자가 유럽인들의 식단에 들어가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곡물을 섭취하면 심장과 폐가 무척 튼튼해집니다. 곡물이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는 가슴부분이 튼튼해지고 전체적으로도 건강해집니다. 이 때는 숨 쉬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호흡이 건강하면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있습니다.
이제 Burle씨가 하신 당근에 관한 질문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Burle 씨는 ‘인간의 몸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갈구합니다. 아이들은 당근을 자주 집어 들죠. 아이나 어른이나 가끔은 몸에 좋지 않는 것을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 데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아이는 당근을 먹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동물들에게 어떤 먹이가 자기들에게 이롭고 해로운지 알아보는 본능이 없었다면 오래 전에 멸종됐을 것입니다. 가축을 키우는 목초지에도 독초가 있습니다. 가축들이 본능적으로 그 독초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면 당연히 뜯어 먹겠죠. 하지만 가축들은 독초들을 알아보고 입도 대지 않습니다.
사실 동물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들에게 이로운 먹이를 알아보고 먹습니다. 혹시 거위를 잔뜩 먹여 살찌게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거위가 스스로 먹이를 잔뜩 먹을까요?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거위는 절대 과하게 먹이를 먹지 않습니다. 돼지의 경우는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돼지는 그다지 날씬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돼지는 별개입니다. 돼지들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특성이 있습니다. 옛날에 돼지들은 몸에 지방을 붙게 하는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선사시대를 지나오면서 그런 특성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원시시대 돼지들은 강제로 먹이를 잔뜩 먹어야 했습니다. 어떤 동물도 스스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물질주의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물질주의는 더 이상 이런 본능을 믿지 않습니다.
제게는 같이 종종 식사를 했던 어린 시절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음식에 대해선 꽤 분별력이 있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주문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어쩌다가 연락이 끊기게 되었죠. 몇 년 후에 그 친구가 사는 도시로 갈 일이 있어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제가 식탁에서 무엇을 봤을까요? 접시 옆에 둔 저울이었습니다. “너 이 저울 왜 여기 올려놨어?” 전 짐작은 했지만 친구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음식이 오면 고기나 샐러드 무게를 재려고. 적정량을 먹어야지’ 내 친구는 과학이 일러준 대로 자기 접시 위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들의 무게를 재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친구는 자기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본능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이제는 전혀 모르게 되었습니다. 예전 책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사람은 하루에 120에서 150 그램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제 친구는 계속 이 분량을 저울로 재면서 고수해왔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적정 일일 단백질 필요량은 50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친구가 먹은 양은 잘못된 것이었죠.
물론, 여러분, 당뇨가 있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당분이 원인이 된 당뇨병만 보더라도 우리가 영양에 대한 본능을 잃어버렸음을 보여줍니다. 문제의 요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기생충이 잘 생긴다면 아이는 최선을 다해 기생충을 예방하려 들것입니다. 아이가 텃밭에 심은 당근을 찾아 헤매다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랄지도 모르죠. 당근 밭이 멀리 있다 해도 아이는 터덜거리며 걸어갈 것입니다.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은 당근이 입에 당기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입니다. 아이가 여위어가면 잘 살펴보십시오. 젖을 뗀 다음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찰해보세요. 아이가 외부적으로 영양을 섭취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이걸 먹어라 저걸 먹어라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이의 건강한 본능을 망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본능적으로 찾는 음식을 주어야 합니다. 당연히 지나치게 그 음식만 찾는다면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도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부분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자신이 아이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식탁에 앉는 순간 의자 위에 올라가 설탕 한 덩어리를 슬쩍 하려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올바르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의자 위에 올라가 설탕을 슬쩍 하려 한 아이는 분명 간에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설탕을 슬쩍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신호입니다. 간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이 설탕을 슬쩍 합니다. 이것은 설탕이 간을 치료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 외의 아이들은 설탕에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물론 설탕을 자꾸 몰래 먹으려는 버릇을 우리가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왜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지는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볼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엄마, 아빠가 보고 있지 않을 때 설탕을 몰래 먹어야지 하고 계속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는 버릇이 생기면 나중에 다른 물건도 몰래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아이에게 설탕을 주어 아이의 욕구를 만족시켜준다면 도둑이 되지는 않겠지요. 부모가 이런 점을 잘 관찰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합니다.
따라서 방금 이 문제에 이런 식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지 마라. 예를 들어 아이가 고기를 싫어한다면, 이런 아이가 꽤 있습니다, 아마도 장에 문제가 있어 고기가 당기지 않고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이의 본능은 옳습니다. 다 같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모두 고기를 먹고 있는데도 고기를 먹기 싫다고 하는 아이는 분명 장에서 고기를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학이 좀 더 세심해져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께서는 이제 아시겠지요. 과학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오늘날 과학은 지나치게 대충 대충입니다. 저울이나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들만으로 진정한 과학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양섭취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이 분야가 정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올바르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전 보통 예를 두 가지 듭니다. 여러분, 기자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직업은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심지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생각해야 하고 그것도 논리적으로 맞아야 합니다. 그토록 많은 생각이 심지어 논리적이기까지 해야 한다면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커피를 무척 사랑하지요. 카페에 앉아 연달아 커피를 마시며 펜을 자근자근 씹고 있다가 뭔가가 생각나면 얼른 써내려 갑니다. 펜을 이빨로 자근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 도움이 안되지만 커피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생각이 하나 떠오르고 연이어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서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되지요.
외교관을 한 번 봅시다. 생각이 연달아 떠오르고 꼬리를 물고 생각난다면 외교관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닙니다. 외교관들이 논리적이라면 지루하기 쉽지요. 외교관들은 유쾌하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사교장에서 사람들은 첫 번째는 이렇고 두 번째는 저렇고 세 번째는 어쩌고 하는 식의 논리적인 설명을 들으면 피곤해합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생각이 없다면 그 다음 생각들도 없겠지요. 기자들이 금융기사를 쓴다면 금융만을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외교관이라면 어떤 나라의 경제상황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나이트클럽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고 누구네 부인이 만든 슈크림 빵 맛을 이야기 하다가 식민지의 토양이 비옥하다는 둥, 최고의 말은 어느 마장에서 교배해야 한다는 둥 온갖 얘기를 한꺼번에 할 수도 있습니다. 외교관들의 생각은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넘나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매력적인 대화상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본능에 따라 차를 많이 마셔야 합니다.
차는 생각을 흩어놓습니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뛰어넘게 만들지요. 커피는 생각들을 차례대로 연결 짓습니다. 온갖 생각들이 두서없이 활발하게 일어나길 원한다면 차를 마셔야 합니다. ‘외교관들의 차’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기자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연달아 마시겠지요. 자, 특정 음식이나 음료가 사람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아시겠지요. 이것은 커피나 차, 이 두 음료에 해당하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는 극단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보고 음식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