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음 vs. 현장음
어린 아이들의 경우 소리는 호흡, 맥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들숨, 날숨의 리듬 역시 이러한 호흡, 맥박과 함께 어우러집니다. 영혼적으로 보자면, 소리를 듣는 것, 악보를 읽는 것, 연주를 듣는 것은 들숨이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몸을 들썩이는 것은 날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자아 측면에서 보자면, 음악이란 ‘지상적’인 물질 신체와 도구를 사용해서 ‘천상적’인 우주의 소리를 만들어내면서 그 기억을 떠올리는 작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꽃이나 하늘, 석양, 무지개 등 다양한 색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소리 역시 획일적이고 평면적인 기계음 또는 녹음, 저장된 소리보다는 생생하고 울림을 가진 다채로운 현장음을 권장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물건들의 소리, 친구들의 목소리, 나무숲 새소리, 바스락 낙엽소리, 눈 밟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등은 각각의 고유한 느낌과 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이러한 소리에 더욱 민감합니다. 아직 어릴수록 아이들은 몸 전체로, 즉 양쪽 귀 뿐만이 아니라 피부, 그리고 몸 속 장기를 통해 소리를 받아들이고 그 울림을 감지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모든 소리를 다 받아들이고 취사선택해서 특정 소리만 막아내고 이에 저항하는 힘이 강하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가 저녁에 사람 많은 쇼핑센터 같은 곳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면, 입력된 감각 인상들을 제대로 모두 '소화'시키지 못한 체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할 때 (또는 말할 때) 우리 내면에서는 동일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후두가 활성화되고 그 음악에 맞춰 우리는 내적으로 춤을 추게 됩니다. 이러한 내적활동을 이미 녹음된 소리에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감성적인 부분이 연결되기는 하겠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연주자나 노래하는 사람의 특정 의식을 인지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또한 한 자아가 표현하는 진정한 소리의 울림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공간에서 실제 연주를 듣는 사람들의 뇌파가 특정 주파수 범위에서 정확히 동기화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음악을 듣는 동안 공연자와 더 잘 연결됨을 느꼈다고 합니다. 물론 동일한 음향조건을 갖추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시청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자음악은 전기 임펄스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체적으로는 어떤 울림(공명)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오직 그 자리에 함께함으로써 가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공감과 반감의 건강한 리듬을 통해 판단하고, 이후 결행하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느낌을 통해 배우는 담임과정 아이들에게 감성적 능력의 계발은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이때 심장은 아름답고 ‘살아있는’ 음악적 리듬 안에서 더욱 활기찬 생명력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감성적 능력은 반복과 연습을 통해 이후 자연스럽게 사고능력으로 변형을 이루게 됩니다.
요즈음은 가게나 음식점에 가면 항상 음악이 배경에 흐르고 있습니다. 식당에 가면 손님들을 위해 TV를 틀어 놓고, 자동차를 타면 자연스레 라디오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백화점이든 옷가게에 가면 가요나 팝송이 끊임없이 재생되어 들립니다. 아이들은 외부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전자음에 모두 반응하면서 쉽게 주의를 뺏기고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라디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음악과 말소리, 그리고 광고들이 쉼없이 이어집니다. 전자음이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러한 소음이나 배경음은 아이들의 경청하는 능력에 방해가 됩니다. 아이들은 소리를 주체적으로 막아내지 못합니다. 또한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무드에 쉽게 동요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내적 공간을 만들면서 사고와 판단을 위한 고요함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미 어느정도 몸에는 잔잔한 소음이 축적되었고, 음악을 들을 때도 이제 볼륨은 상당히 높아집니다. 특히 이어폰을 통해 높은 볼륨으로 듣다 보면 아주 일찍 청력이 손상되기도 합니다.
감각론에서 다루듯, 청감각은 상위감각의 첫 관문으로, 언어감각, 사고감각, 그리고 타인의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자아감각으로 발전해갑니다. 물론 수동적인 듣기보다 실제 악기 연주나 노래를 통해 하위/중위감각이 먼저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리듬과 비트는 몸 안팎의 움직임(순환계, 호흡계), 균형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눈은 형태를 인식하지만 귀로 듣는 소리는 체험해야 합니다. 조소나 미술이 예술의 한 대상이 된다면 소리는 이와 달리 그 안에서 하나의 체험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진전이나 미술관람은 보면서 이해를 위해 사고하고, 사고한 이후 느끼는 예술영역이라면, 음악은 듣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형태를 가지지 않기에 무한한 창조의 힘 역시 여기서 시작합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항상 가능하다면 실제 연주를 통해 수업이 진행되고 다양한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실제 공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녹음된 음악을 틀지 않고 그 현장에서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살아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혼자, 또는 함께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살아있는 음악은 저장할 수 없기에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의지활동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교사가 수업을 사전 녹화해서 반복 상영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이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독립적 사고를 통해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바탕에는 아이들의 건강한 신체적/정서적 발달과 주변 환경과의 의미 있는 관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이들이 일찍 접하게 되는 전자 미디어(TV, 영화, 컴퓨터, 휴대폰, 비디오 게임, 음악/MP3 플레이어를 포함한 각종 비디오/오디오 전자장치 등)와의 만남은, 많은 경우 주변 환경과의 실제적이고 진정한 경험을 약화시키고, 또는 심지어 자신이 속한 세상으로부터 분리를 조장하고, 현실 세계를 왜곡하기도 합니다.
풍부한 실제적 경험의 토대가 갖춰진 이후 미디어가 적절한 시기에 도입되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원과 도구로써 전자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자 미디어가 자신들의 실제적 경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역할임을 제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녹음, 즉 전자음은 득이 되는 면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면을 잘 고려해서 신중히 사용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