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속의 아리만과 루시퍼
내 몸 속의 아리만과 루시퍼
지상에서 인간은 인간만의 왕국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천상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땅과 그 위에 생명체에 의존하는 상당히 지상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두 가지 존재, 그리고 이 두 가지 힘의 긴장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천사 같은 천상적 존재이기도 하고 때론 자기보다 약한 먹이를 쫓는 야수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생각으로, 우리는 항상 하늘의 뜻을 따르고 지상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육신은 타락하고 부끄럽고, 정신은 숭고하고 고양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인도의 요가나 육신으로의 재육화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오랫동안 천상과 지상, 선과 악, 몸과 정신, 그리고 나중 프로이트의 이드와 초자아 등의 이분적 프레임을 유지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류는 천상적인, 그리고 지상적인 두 가지의 사명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명확하게 한 쪽이 선이고 다른 쪽이 악이라는 구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말하는 이 두 가지의 힘을 위대한 정신적 존재, 루시퍼-아리만의 힘과 영향으로 연관 지었습니다.
루시퍼는 라틴어로 “빛을 가진 자 또는 빛을 나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했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사악한 존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을 향한 마음이 너무나 강할 때, 너무 멀리 가버렸을 때는 소위 타락과 퇴폐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에 우리는, 장난으로도, ‘악마’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루시퍼는 인간이 더 확장, 팽창되어, 스스로가 선과 악을 알고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루시퍼의 유혹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도 등장하고 그리스 신화에도 나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의 아름다움을 쫓아서 서슴지 않고 높은 하늘 위를 끝없이 비행하던 이카루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루시퍼의 이러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루시퍼의 영향은 마약의 남용과도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충분한 명상이나 원칙 없이 빨리 정신의 세계, 천상의 세계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또 거기로 향하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오랜 조상들을 루시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즉 판타지와 환영, 주술이나 미신적인 사고에 친화성을 가졌습니다. 오늘날은 이전과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고,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감각에 기반을 둔 물질주의에 친화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리만이라는 존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리만이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로부터 나왔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태양신 아후라 마즈다를 통한 가르침을 행할 때 아리만은 우리 모두가 오직 지상적인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의 신성한 기원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는 영혼과 정신의 영역에 대한 추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그렇게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현재까지 우리의 주된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20세기 들어서 더욱 강해지면서 현대 과학은 물질을 가지고, 수치로 측정하고 증명하는 경향성을 더욱 키우게 되었고, 인간은 많은 경우 단순히 기계, 또는 고등 동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리만은 인간은 수축시키고, 지나치게 지적경향에 몰입하게 하고 정신적 실재를 부정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루시퍼는 그리스도 이전 세 번째 천 년 동안 인간의 몸에 육화 했고, 아리만은 그리스도의 육화 이후 세 번째 천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육화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아리만의 도래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보면 둘 중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며 우리 인간에게는 더 나은 진화를 위해 마치 선물처럼 주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이 두 가지 힘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두 존재는 서로 양극적인 성격과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는 정신을 통한,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이드를 통한 균형 잡힌 통합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괴테아눔에 가시면 우리는 슈타이너의 작품, “The Representative of Humanity”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영광스럽게, 위와 아래 양쪽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 인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루시퍼적인, 그리고 아리만적인 힘 이외에도 세 번째 힘, 즉 우리 안에 내재한 ‘나’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를 깊은 잠에서 다시 깨워낼 우리의 중심에 서있는 힘입니다. 아리만과 루시퍼는 우리 인긴의 아스트랄체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힘은 오직 '나'를 통해서만 작용하기에 쉽지않은 싸움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직 그리스도의 안내를 통한 '나'를 통해서만 그 작업은 가능합니다.
참고로 루시퍼와 아리만 각각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루시퍼 (Lucifer) | 아리만 (Ahriman) |
광란, 과잉, 지나친 말과 행동 | 지루하고 따분함 |
통일, 일반화 | 다양함, 특수화 |
세계 단일어 | 다양한 언어 |
영적 인식, 말하기와 사고하기 | 통계, 증명, 논리 |
질적 추구 | 양적 추구 |
판타지, 환영, 미신 | 실체, 감각, 물질 |
정신적 우주론 | 수학적 천문학 |
하나를 위한 비전 (예를 들어, 국제연합) | 각자의 비전 (예를 들어, 맹목적/우월적 쇼비니즘) |
유연성, 공기같은 성질 | 응결, 화강암 같은 성질 |
이카루스의 고공 비행 | 프란시스 베이컨의 겸양 |
이교도의 지혜 | 기술적 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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