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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전형: 균형을 잡는 자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려는 것일까요? 우선 우리는 이 작품에서 세 가지 존재를 보게 됩니다. 루시퍼와 아리만, 그리고 그 가운데에 인간(그리스도)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위에서 날개를 달고있는 '선'과 저 아래 지하동굴에 누워서 버티는 '악'을 묘사한 양 극단과, 그리고 그 사이에 당당히 서 있는 한 신적 존재를 표현한 종교적인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선이란 무엇인가요? 아주 오래 전 위대한 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이란 악의 반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선이란 다만 두 개의 양 극단 사이에서 우리가 이루어내는 '균형'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용기가 비겁함의 반대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일 겁니다. 왜냐하면 무모함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용기(무모함)와 너무 적은 용기(비겁함)의 사이에 중용으로서 용기가 존재하게되고 이를 선이라고 할 있을 것입습니다. 또한 지나친 호감(집착)과 지나친 반감(무관심)사이에서 상대를 향한 공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용기와 공감 이외다른 모든 미덕에 대해서도 같은 것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선은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것 사이에 있습니다. 어떤 물질이 우리에게 독이 될지 아니면 치료제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적절한 양입니다.


'인간성의 전형: 균형을 잡는 자'를 통해, 루돌프 슈타이너는 우리 모두가 그 중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스스로 맡았습니다. 조형물의 가운데에는 양팔을 뻗어 (가슴으로부터, 그리고 머리로부터) 위와 아래의 중간 영역을 지탱하려는 한 인간이 서 있습니다. 인간은 두 극단 사이에서 자신을 더 확고히 지탱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현상, 즉 수축, 경화, 경직, 지나친 구조화와 두려움은 아리만으로 대표됩니다. 그리고 그 극단에는 팽창, 와해, 흥분, 허영, 자존심이 있고 이는 루시퍼로 상징됩니다.

슈타이너는 인간으로서 예수 몸 안으로 그리스도의 존재가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이제는 한 인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로 다시 육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루시퍼와 아리만의 여러 유혹들을 받고 또 물리치게 됩니다. 아리만은 새롭게 육화한 태양 존재를 피해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자기 스스로를 지구 안의 금맥에 묶게 됩니다. 여기서 아리만은 극도의 수축과 긴장을 통해 고통스럽게 뼈가 굳어갑니다. 강하고 파괴적인 일면과 함께 우리의 동정을 사기 충분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반면 루시퍼는 스스로 자신의 날개를 꺾고 심연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조형물의 오른편에 빛의 날개가 부러진 루시퍼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스도 루시퍼 아리만 유머

 

우리의 사명이란 이렇게 얻게 된 또는 구원받은 균형과 조화를 지구와 인류의 진화를 통해 이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 안에는 3년간의 그리스도의 사명과 인류가 이어받아야 할 사명이 들어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유혹해서 끌어내고 다른 쪽에서는 인간을 한쪽으로 매몰시켜 중심을 잃도록 만듭니다. 인간은 그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그들의 힘을 좋은 쪽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리만의 구조적인 힘 없이는 현대의 기술도 없고 루시퍼의 열정이 없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시퍼와 아리만은 그리스도 앞에서 그러하였듯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인간 앞에서는 자신들의 힘을 전적으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건강한 균형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유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머는 우리가 삶의 투쟁에 의해 씁쓸해지거나 굳어지는 것을 피하고, 그 균형을 회복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유머가 작품의 왼쪽 상단에서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조각상은 1922년 새해 전야에 방화로 인해 소멸된 첫 번째 괴테아눔의 가운데에 놓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목조 조형물이 완성되지 않아 아직 의도한 공간에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각상은 그 파괴적인 화재를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에서처럼 그렇게 마지막으로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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