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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단계의 기억과 개별성의 관계

아이가 태어나서 세 번째 해 즈음이 되면 이제 걷기, 말하기의 다음 단계인 사고하기가 시작됩니다. 이때 기억하는 능력은 주요한 요소가 됩니다. 전반적인 사고의 발달은 언어 형성력 및 기억의 성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 어떤 식이든 주변과 소통해보려는 과정에서 이전의 것을 떠 올리면서 현재와 연결 지어보려는 시도도 생깁니다. 이 과정은 이전 기억을 자극하면서 기억력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대개 세 번째 해에 자신 자신을 '나'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기억도 시작됩니다. 기억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현대과학에서도 오랜 연구과제입니다. 이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간 역사 발달의 큰 틀에서 아이의 기억이 변형을 이루면서 발달해가는 기억의 세 단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형태의 기억은, 아틀란티스 시대의 기억으로 장소 기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억은 자신이 놓인 주변의 환경이나 거기에서 받게되는 특정한 감각적 인상을 통해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상 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표식을 해 두었습니다. 뭔가 그 장소에서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면 그 자리에 비석이나 돌 무덤처럼 뭔가를 세우거나 쌓거나 아니면 어떤 식이든 크게 표식을 해 두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특히 손과 발의 상당한 신체적 움직임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돌을 세워놓고는 나중에 그 곳을 다시 방문해서는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 기억하려면 잘 떠올려지지 않다가도 어쩐 일로 어린 시절 살던 곳을 방문해서 오래 남아있는 건물을 보게 된다면 불현듯 그것과 연결된 많은 기억들이 떠 올려집니다. 지금도 우리는 땅 위에 비석을 세우고, 무덤을 쌓고, 탑을 세워서 뭔가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물론 기억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습관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큰 회사들은 아주 높은 건물을 세워 뭔가를 기념(?)하기도 합니다. 자칭 랜드마크 라고 합니다.

그 다음 역사적으로 발전시킨 기억의 단계는 리듬적인 기억입니다. 시기로 본다면 고대 아틀란티스에서 고대 후기 아틀란티스로 넘어가는 기원전 8천년 전입니다. 고대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방랑하면서 아시아 쪽으로 이동한 시기입니다. 인간은 한 번 들은 것을 그냥 잊어버리기보다는 여러 번 되뇌거나 반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집니다. 뻐꾸기 소리를 cuckoo하거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빠빠빠 빠빠빠 어린 음악대 처럼 비슷한 소리를 이어가고, 또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리듬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리듬은 호흡을 잘 가다듬어 음율 있는 시가 되고 또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고대 영웅서사시나 바그다드 기타, 니벨룽겐의 노래 등은 오랜 동안 소리와 리듬으로 암송되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리듬적 요소가 있을 때 훨씬 더 기억하기가 쉽고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시켜보면 노래나 시 가운데에서 시작하기는 쉽지않고 또한 특정 부분만 떼어 개별적으로 기억해내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형태의 기억은 상(그림)을 통한 기억, 시간적인 기억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억 형태가 가능하게 되었던 시기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전환기로 이때 리듬적인 기억에서 시간 기억으로 넘어갑니다. 시간 기억은 자신의 전기적인(biographical)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his-story로서 내가 지상에 살아오면서 특정한 시점의 기억으로 거슬러올라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발전된 것으로 이전처럼 뭔가 무거운 것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리듬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어떤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능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상당히 머리와 관련 있습니다. 고요하게 뭔가를 비추어 그것을 거울처럼 비추어 상을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기억의 단계는 아래에서부터 위쪽 머리로 향합니다. 생애 첫 3년 동안 걷기, 말하기, 사고하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 신체의 삼중성과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첫해는 서고, 여기저기를 걷고, 몸으로 실제를 경험하듯 이때 발달하는 장소 기억은 신진대사-사지계와 연관이 있고, 두번째 해는 심장과 폐의 리듬계를 통해 호흡하면서 말하고 노래하는 리듬적인 기억과 연관이 있으며, 세번째 해는 고요한 머리 안의 신경감각계에서 상을 통한 기억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생애 첫 3년은 매 7년 주기, 그리고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 7년과도 연관성을 가지게 미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가운데 장소기억은 특히 아이들이 강합니다. 특히 6세가 되기 전까지는 자기 의지대로 뭔가를 쉽게 기억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 물어보면 모른다는 답을 하다가도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 한 구절이나 어떤 냄새 등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에 노출되었을 때는 놀랍게도 아주 세세하게 잘 기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기억의 단계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에서 외부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는 추상적으로 향하는 단계이며, 또한 자기 외부 주변을 통한 기억에서 하나의 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며,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배우고 기억하고 떠 올리며 사고하는 전체 단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자유와 개별성을 접하게 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두 번째에서 세 번째 기억으로 넘어가게 된 데에는 ‘쓰기’가 있었다고 하며, 기록은 몸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고 개별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슈타이너는, 리듬적이고 의례적 기억에 기반한 문화는, 숭배와 제사의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기억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는 지속, 반복되면서 변화하기가 쉽지 않고, 그것이 대체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사고의 발달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일이 이제는 기록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의례와 같은 신체 기억에만 구속되지 않습니다. 이제 기억은 그러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고 각자가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인간은 점차 더 독립적인 개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전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Rudolf Steiner, Stutt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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